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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은혜: 대단히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특별한 선물>

◈ 뿌리 깊은 신앙은 책을 먹고 자란다 ◈

“우리는 은혜란 말을 너무 흔하게 쓰고 있다.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실례를 할 수 있음과 같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은혜란 말을 오용할까 두렵다. 어떤 신학자는 싸구려 은혜야말로 교회의 치명적인 원수라고 말했다…사실 우리들 교회와 크리스천의 공동체 안에는 은혜를 너무 쉽게 말 하기 때문에 은혜를 모독하고 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 말을 써야 함은, 이 말속에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있고,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극치가 있기 때문이다”(김정준).

     

이 세상에서 가장 은혜로운 말은 ‘은혜’라는 말 그 자체이다. 우리는 은혜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에 울컥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인간의 삶에 은혜가 없다면 인간은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 많고 불완전하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삶에서 은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은혜는 일반적으로는 ‘고맙고도 감사하게 베풀어주는 신세나 혜택’을 뜻하며,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래서 은혜의 기본적인 의미는 공짜, 대가나 조건 없이 받음, 거저 받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럴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 특별한 것이 수여되는 것이다.

     

특히 은혜는 기독교 신앙과 구원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인간은 자기의 믿음과 구원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거저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믿음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두 손을 벌려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저 베풀어주시는 믿음과 구원을 받으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가장 남용되기 쉬운 것도 <은혜>라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 중 하나는 은혜를 아무렇지도 않게 남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악하고 기회주의적이어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그 귀한 은혜를 싸구려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는 게 있다. ‘회개’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면서 내적인 안도감을 갖는다. 그러나 ‘회개’도 은혜의 선물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 받을 수 있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특별한 방편이다.

     

신앙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하고 가르치고 강조한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그는 자기의 신앙생활 내내, 복음 전도사역을 하는 내내 그리고 서신서들 전체에서 믿음과 은혜를 강조하지만 한 번도 막 살지 않았다.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복음에 합당한 삶, 은혜에 합당한 삶을 강조하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썼다. 그는 자기 삶에서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가 진정으로 은혜 되도록 하기 위해서 늘 거룩한 삶을 추구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1-3).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15-16, 19).

     

은혜는 방종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막 사는 삶을 위한 보장권이나 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적 사랑이다. 그래서 그것은 인간에게는 책임적 거저 받음이다. 은혜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구원 받은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고백하고 그가 그것에 반응했던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전 15:10-11).

(토, October 4, 2025: secondstepⒸ2025

밭에서 아주 잘 익은 호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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