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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앙의 핵심으로서의 순종>

◈ 뿌리 깊은 신앙은 책을 먹고 자란다 ◈

“기독교인은 삶에 더 큰 의미를 주는 소망을 축복으로 받았다. 이 세상의 삶 이후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시대의 성인들과 영원히 교제를 갖는 삶이 있다. 이 사실은 순종의 가치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영원한 교제 속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순종한다.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과 갖는 교제에 있어서 핵심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복과 성공의 가치는 전혀 의미가 없다”(테드 워드).

     

☞ 이어 쓰는 글:

믿음과 순종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믿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순종은 믿음의 가장 확실한 지표이다. 반면에 불순종은 불신앙의 가장 확실한 지표이다.


순종은 ‘순순히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는 것이다. 반면에 불순종은 순순히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은 순종과 나뉠 수 없다. 믿음은 곧 순종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순히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하여 죄와 사망 가운데 처하게 된 것은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해 불순종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에서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다. 순종은 복을 가져오나 불순종은 죽음을 가져온다.


순종의 전형적인 예들 가운데 하나는 아브라함의 사례이다. 그는 소중하게 여기던 늦둥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거부하지 않고 아들을 바침으로써 전적으로 순종했다. 하나님은 그의 순종을 받으셨고 아들 이삭도 무사했다. 그는 그 순종으로 인해 믿음과 순종의 모범이 되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시대에 그리고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또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 많은 시대에 순종은 쉽지 않다. 더욱이 지속적인 순종은 더욱 어렵다. 그러함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순종은 본질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고 또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얻는 모든 것은 전혀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 그런 것이 일시적인 만족을 줄 수는 있어도 영속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영적으로도 무의미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물음이지만 그러한 삶을 사는 비결 중 하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좋다는 것을 계속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뿐 아니라 순종의 지속성의 열쇠는 영원한 삶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으로 끝나면 굳이 순종하며 살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지막이라면 유한한 인생길에서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즐기며 살면 된다. 바랄 수 없는 영원한 세계와 그곳에서의 영광스럽고 즐거운 삶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만족과 즐거움보다 더 크고 영속적인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의 욕망과 욕구를 절제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처사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라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권면했다.


실제로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날들은 매우 짧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우리의 날들은 매우 길다.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 (화, November 4, 2025: secondstepⒸ2025

순종과 불순종 쎔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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