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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나님께 가까이>

◈ 뿌리 깊은 신앙은 책을 먹고 자란다 ◈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됨으로, 하나님과 인간 쌍방으로부터 행동이 개시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까이하시고 그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처음에는 그 간격이 멀리 떨어진 상태이나 점점 더 가까워져서 마침내 간격은 전혀 없어지게 되고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그 순간은 너무나 은혜스러워 결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단지 그때에만 비로소 하나님께 “가까이”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 가까이함,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느낌 여하에 따른다. (아브라함 카이퍼)

     

☞ 이어 쓰는 글: 개인적으로 친구들을 좋아한다.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친구들은 그만큼 부담이 없어서 언제든지 찾아가 만날 수 있다.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도 편안하게 만날 수 있어서 좋고 아무거나 먹어도 거리낄 게 없어서 좋다.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나눠 먹으면서도 함께 즐겁게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또는 누군가 다가오는 게 적잖이 부담될 수도 있다. 초면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물론 사교성이나 붙임성이 좋거나 적극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어색한 일이라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친분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게 펀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렇다.

     

실제로 만남의 깊이는 관계의 깊이와 관련된다. 그리고 관계의 깊이는 대개 공유한 시간의 양과 비례한다. 그래서 오랜 만남과 오래된 관계의 사람이 부담이 적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좋고 친밀한 만남은 만남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물론 만남이 곧 관계의 형성은 아니다. 많이 만나고 오래 만나도 깊은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 대개 관계의 형성은 시간이 필요하나 상호 간에 적극적인 다가감과 나눔이 중요하다. 사귐은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교제는 상호적일 때 의미가 있다. 일방적인 다가감은 관계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관계도 그와 같다.

     

이런 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예배당에 오래 다녀도 믿음의 깊이가 얕을 수 있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깊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예배당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이 인습적인 신앙을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0년, 20년 또는 30년 예배당에 다니면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성경 한번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다. 개인적으로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직분은 있고 교회 생활의 연수는 있는데 믿음은 그리 깊지 않은 것이다. 종교에 빠지지 않게 적당히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깊이 있는 영적 세계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신앙의 얕은 물가에서 모양만 갖추고 표면적으로 신앙 행위를 하는 것에 만족한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다가가는 게 적잖이 부담되기도 한다. ‘그냥 편하게 믿으면 되지 뭐 그렇게 유별나게 믿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자신은 믿음이 깊어지는 것이 부담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되면 깊이 헌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종교 생활 수준의 현재 상태가 좋다고 했다.

     

사람에 따라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주는 참된 만족과 맛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다. 대개 그런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삶을 보면 전체적으로 표면적이고 피상적이다. 얕고 깊이가 없다.

     

그러나 신실한 신앙인에게는 시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라고 고백했듯이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게 진정 최고의 복이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는 영적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상호 간의 교제를 이루어갈수록 깊어진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다가오심과 나의 다가감이 날마다 제대로 작용하게 되면 그 과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순간이 될 수 있다. 비록 삶의 여러 상황으로 인해 어느 때는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때도 있지만 삶 전체의 지평으로 볼 때 늘 기쁨이 전류처럼 흐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교통과 사귐의 외적이고 내적인 거리가 좁아지면 질수록,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인 합일과 교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의 안과 밖, 곧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때 우리의 삶의 상황과 상관없이 찬송가 가사처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인생길을 걷는 삶의 좋음이고 유익이다.

(토, January 10, 2026: secondstepⒸ2026)

황무지 위의 한 그루 나무와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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