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9. <소명의 관점에서 자신과 자녀의 삶을 이해하기>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무언가를 기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든 창조적 행위는 쉽지 않다. 거기에는 적잖은 수고와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대개 식물은 고정적이기에 외적인 조건들만 충족이 되면 땅에 심고 물을 주면서 가꾸면 잘 자란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이성을 지닌 사유의 존재인 인간은 움직이면서 자라고 자라면서 움직인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자아의식이 형성되고 당연히 그것을 표출한다. 그것은 기르는 사람의 편에서는 다루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르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곤 한다.

     

식물을 기를 때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그냥 일방적으로 물이나 영양분을 적절히 공급해주면 된다. 그러나 인격적인 존재인 인간은 그렇지 않다. 상대가 제멋대로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잘 기르는 것일까? 잘 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 어느 정도까지 또는 어느 부분까지 개입 또는 관여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은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 관한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고 관심 분야로 연구하면서 나 자신에게 제기해온 물음이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바라는 ‘무엇이 되라’고 말하거나 강요해 본 적이 없다(막내는 내가 한 번도 그렇게 강요하지 않은 게 정말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비록 부모가 자녀들을 낳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나름의 자기 됨과 고유성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 것처럼 자녀들도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실제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자기가 바라거나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며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것은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한 번뿐인 인생인데 부모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삶, 곧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원하는 삶과 자녀가 바라는 삶이 같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우리 부모가 바라는 삶이 있었더라도 거의 그렇게 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녀들도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살기를 바랄지라도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서로 힘들어지기 전에 그리고 불행해지기 전에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잘 이끌어 주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소명’(calling/vocation)이란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향한 인생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들 안에서 행하시면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그들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 2:13). 그런 이유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이 되라’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그들이 살고자 하는 삶을 살도록 믿음 안에서 잘 이끌어 주거나 소명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훨씬 낫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 이유이다. 대신에 그들이 하나님의 소명, 곧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생계획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고 깨닫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들에게 특별하게 해 준 것이 별로 없지만, 삶을 소명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해줌으로써 지금은 자기들의 소명을 따라 꿈을 추구하면서 한걸음 또 한걸음 인생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

     

소명의 관점에서 삶을 이해하게 되면 좋은 것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는 상황에 상관없이 인생길을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소명을 찾는 데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데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면서 삶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양육의 대전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믿음으로 키우는 것, 곧 자기의 육신의/생물학적 자녀를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 키우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녀들의 삶에서 소명은 그들의 삶과 장래의 일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도 우선적인 물음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묻고 답을 한 후에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시대에 동떨어졌다고 여겨질 수 있고 또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 있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는 나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

(화, November 11,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단풍잎도 뜻이 있다
단풍잎도 뜻이 있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