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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먼저 자기와 시간을 보내라>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대개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전에 만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늘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낀다고 했다. 일종의 ‘만남 중독’ 또는 ‘관계 중독’ 이라고나 할까? 그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전형적인 ‘타자 의존적 존재’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러한 삶은 대개 그 사람 안에 공허함을 남긴다. 왜냐하면 유명 가수나 연예인의 삶에는 무대 뒤의 삶이 있듯이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기만의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할 수 없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이 박수갈채가 없는 무대 뒤에 있을 때 공허함을 느끼듯이, 타자 의존적 존재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 때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후에 뒤돌아 집으로 향할 때 허전함을 느낀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고 의미 있는 만남은 마치고 뒤돌아 집으로 향할 때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혼자 온다. 혼자 와서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란다. 그리고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관계를 잃어가거나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가기에 점차로 혼자가 되어간다. 그리고는 결국 홀로 남게 되고 혼자서 쓸쓸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필연적인 운명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힘차게 박수하면서 즐겁게 떠나가거나 교향곡이나 행진곡을 부르면서 장엄하게 떠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본래 인간은 혼자 이 세상에 올지라도 공동체적 존재, 사회적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에 무인도나 외딴섬처럼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우리는 본래 혼자 살아가야 하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부모는 물론이고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조차도 인간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기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삶을 바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삶을 영위해 가야 한다. 그래야 자기 됨을 상실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면서 타자 의존적으로 또는 타자 규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자신은 자기 삶을 살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아주거나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삶의 범주 내에서 종속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타자들 속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고유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첫 번째 요소는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자기 형성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세상에 대해 주체적으로 설 수 있다.

     

창세기를 죽 읽어가다 보면 24장에서 조금 낯선 장면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63절). 이삭은 석양에 노을이 물들어 갈 때 들판에 홀로 있으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에 묵상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묵상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는 기록된 말씀으로서의 성경이 없는 때였기에 아마도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면서 창조 세계를 묵상했을 것이고 허전한 마음에 삶과 죽음에 관해 묵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마음에 커다란 슬픔을 안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늙은 종을 시켜서 자기의 고향 자신의 족속이 있는 메소보다미아에 가서 아들을 위해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오라고 보낸 때였다. 이삭은 예수님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던 것처럼(막 1:35) 스스로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홀로 있으면서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과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살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야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가 하는 일을 위해서는 기꺼이 많은 시간을 내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시간인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삶은 전혀 지혜롭지 못하며 분명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 살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행하면서 삶을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쾌락을 추구하며 살거나 오락물을 즐기거나 자기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거나 아니면 방송매체에서 드라마 같은 것을 많이 시청하면서 자신을 즐겁게 하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내적 자아와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그래야 공허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자신과 참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조용히 홀로 있으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기 안의 참된 자기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실제로 많이 사람이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잘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잘 알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해 본 적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토니 캄폴로(Tony Campolo)가 들려주는 자신의 경험담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위대하게 보였던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에드윈 베일리(Edwin E. Bailey)였는데,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프랭클린 연구소(the Franklin Institute)에서 천문관측소를 책임 맡고 있었다. 캄폴로는 대부분의 토요일에 그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그 연구소에 가곤 했다. 그의 해박한 지성은 캄폴로를 매료시켰다. 어린 캄폴로가 보기에 그는 모든 것에 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처럼 보였다.

     

캄폴로는 베일리가 죽기 전까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심각한 뇌일혈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을 갔다. 캄폴로는 한담하려고 애쓰면서 자기가 강연하러 다녔던 곳들과 그가 공항에서 곧바로 베일리의 침상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에 관해 말했다.

     

그때 베일리는 그의 말을 다 들은 다음에 약간 냉소적인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지금부터 십 년 동안 자네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들을 만나러 전 세계에 다닐 것이네. 그러면서 자네를 진심으로 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남겨두지 않았다네.” 그 단순한 문장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Tony Campolo)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면서 살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먼저 돌보고 섬기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면서도 공허하지 않을 수 있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 살아가더라도 일부러라도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내보라. 그리고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자기와의 친밀한 교제를 해보라.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갖다 보면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되고 세상에서 좀 더 깊은 정체성과 자기 이해를 가지고 세파나 세상의 잘못된 문화에 떠밀려 가지 않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 이해가 강화되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세상을 이기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근거를 갖고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 December 10,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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