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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우리의 삶은 많은 물음과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물으면서 살아가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으면서 살아간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물음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그 물음에 대답하면서 살아간다.

     

우리의 삶에서 물음과 대답은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작용한다. 우리의 삶은 그러한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서 더 깊은 인식(앎)과 참된 진리-그런 것이 있다면-의 세계로 진행해 가게 된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 곧 궁극적인 물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마다 자기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함에도 가장 중요한 물음은 우리 존재의 기원과 관련된 물음일 것이다. 인간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물음과 삶의 준거가 되는 것으로 신과 관련된 물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존 블랜차드(John Blanchard)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사소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들은 엄청나게 중대하며 아주 심각한 것들이 있다...그런 가장 중대하고 궁극적인 질문은 하나님에 관한 것, 그리고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인생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건강, 경제적 안정, 안전한 직장, 행복한 가정과 밝은 미래 같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이며, 분명하고 확실하며 영원히 지속될 하나님과의 원활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면 결국은 무익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냉소적으로 반응하거나 그냥 무시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말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실제로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야 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인간의 삶이 이 세상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고전 15:19).

     

그런 경우 사실상 그 말을 한 사도 바울 자신이 가장 불쌍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깊은 지식을 가지고 주변의 존경을 받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하며 궁극적인 것은 그것에 대한 대답에 따라 우리 인생의 목적과 방향, 삶의 방식 그리고 궁극적인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의 뜻과 의도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 경우에 절대적인 진리가 있게 된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사람들이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말은 다음과 같은 말씀들일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시 24:1-2).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시 89:11).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자기 마음에 “하나님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그 어리석은 사람은 부패하고 그의 행실은 가증하며 선을 행하지 않는다(시 14:1).

     

반면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역설적으로 자기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한 자가 된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 되고 그래서 세상에는 상대적인 진리만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진리는 자기 규정적이 된다. 그런 경우 삶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고 자기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곧 절대적인 진리-그 자체도 상대적임에도 불구하고-가 된다.

     

이렇듯 우주 가운데 신적 존재가 없다면 모든 것은 우연히 생긴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 되기에 ‘보편적이니, 진리니,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들은 모두 헛된 말이 된다. 어떤 것을 판단할 절대 근거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인 견해만 있게 되고 오직 개인적인 선택과 사회적 합의-그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다-만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현명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그 물음에 스스로 ‘그렇다’라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된다면 그 하나님에 대해 가장 현명한 대답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의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라고 여겨진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시다가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이렇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그때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세간에 떠도는 사람들의 견해와 생각을 전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그들의 견해와 생각을 물으신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그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것을 베드로에게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대답은 그의 단순한 견해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하나님의 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입을 통해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에 대한 자기들의 생각이나 견해를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정체성의 진위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견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참이거나 거짓이다.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견해와 생각은 절대적이지도 않고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견해나 생각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생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거나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옳은 것이고 절대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다. 그것은 모든 것의 기준 자체이신 하나님에 의해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라면 인생에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가 된다.

     

진정 그렇다면 베드로처럼 고백하고 그를 믿고 섬기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현명하고 탁월한 선택이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각자 운명의 궁극적인 갈림이 될 것이다.

(화, December 2,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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