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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빌리 그래함과 찰스 템플턴: 다른 선택, 다른 과정 그리고 다른 결과>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살아 있을 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 목사와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 1915-2001)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한때’ 빌리 그래함 목사와 함께 북미 복음 전도 운동을 주도한 바 있는 찰스 템플턴은 1936년에 신앙을 고백하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1945년에는 빌리 그래함 목사를 만나 친구가 되었고 복음 전도 운동을 함께 하게 되었다. 1946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유럽으로 복음 전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템플턴은 1948년부터 빌리 그래함 목사와 삶과 신앙이해에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고통’의 부조화 문제 때문이었다. 그는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드디어 1957년에 ‘자기가 이십 년 넘게 설교해 왔던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다’라고 말하고는 공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면서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작별을 고했다. 그의 책 『하나님과의 작별』(Farewell to God)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비록 믿음의 세계를 떠나서 살아갔으나 사회적으로는 많은 것을 얻으면서 살았다. 계속해서 명예와 부를 얻었는데, 본래 언론인이었던 그는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서 캐나다의 주류 신문사 두 곳을 경영했고 한 방송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어서 마음은 늘 공허했다. 그가 다다른 마지막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내적 공허감과 허무함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중요한 인간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가 그리워요”라고 말했다(Lee Strobel). 그리고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다. 자기가 부인하고 버린 하나님과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 때문에 그리워하는가?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하겠다. 자기 인생을 허비하게 만든 망상을 갖게 한 존재에 대해서 오히려 욕하고 저주할 것이다).

     

반면에 빌리 그래함 목사는 회심을 경험한 후 평생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자기가 믿고 따르던 그리스도와 함께 끝까지 인생길을 걷다가 그분의 품에 안겼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그의 인생에서 최고로 기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내가 예수님과 나눈 사귐이었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 그분이 나를 안내하시게 하는 것,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의 임재와 나를 통한 그분의 능력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즐거움이었습니다”(J. M. Stowell).

     

그리고 자신의 책에서 각각 이렇게 말했다. “그 희망[모든 것 중의 가장 큰 희망,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절대적인 확실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선행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예수님의 보혈과 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변한다. 유행도 변한다. 조건들과 환경들도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목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영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찰스 템플턴은 하나님 없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 마지막까지 ‘의미 없는’ 그리움과 ‘당연한’ 공허함이 담긴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그도 예외 없이 “온 세상이 가는 길”(수 23:14)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왕상 2:2)로 갔다. 늦가을 찬바람 맞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전혀 쓸데없는 그리움을 안고 쓸쓸히 생을 마쳤다. 땅에 떨어지고 흙으로 돌아갔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본질이 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언제나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삶은 곧 선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선택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필연적으로 결과를 가져오는데, 하나의 선택이 하나의 결과를 가져오려면 반드시 과정-하나 또는 그 이상-을 거쳐야 한다.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결과와 과정은 선택의 영향 또는 지배를 받는다. 물론 결과는 과정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결과는 선택과 과정의 산물이다. 그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바른 선택은 필수적이고 당연히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더욱이 선택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수반한다. 그래서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에 대한 책임은 선택한 사람 그 자신이 져야 한다. 그것은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에 뒤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가을 낙엽처럼 이 세상에 떨어진 다음에 아무리 후회해도 전혀 의미가 없다.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4:2).

(화, November 18,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바닷가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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