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7. <모든 죽어가는 것을 절대화하지 않기>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인간은 모든 면에서 유한한 존재이다. 특히 인생의 기간에 있어서 유한하다. 때가 되면 죽어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죽는 존재이다. 이처럼 태어난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이런 점에서 삶의 과정은 곧 죽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죽어 가는 것이다.

     

힘 있는 사람도 죽고 힘없는 사람도 죽는다. 배운 게 많은 사람도 죽고 적은 사람도 죽는다. 가진 게 많은 사람도 죽고 적은 사람도 죽는다. 어린아이도 죽고 노인도 죽는다. 인간이면 누구도 죽음에 예외가 없다. 다 죽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죽는가?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인간의 타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불순종의 원인은 피조물인 유한한 인간이 자기를 절대화하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헛된 욕망에서 기인했다. 이렇듯 인간의 죽음은 자기 절대화의 헛된 욕망으로 인한 타락의 결과이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타락한 인간의 현저한 특징 중 하나는 교만하여 자신을 절대화하거나 무지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절대화는 자기를 높이는 일종의 신격화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신을 절대화한 인간이 수없이 많다. 물론 그들은 모두 예외 없이 죽었고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이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임에도 상대적으로 특정한 정치 지도자들이나 힘 있는 사람을 영웅시한다. 그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정치적 욕망을 달성하려고 하거나 자신들의 약함을 정신적으로 극복해 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러한 특정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치켜세우기에 자기가 대단하다고 착각하여 스스로 절대화하기도 한다. 당연히 그런 사람은 몰락하게 된다. 사람들은 쉽사리 변하고 자리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대중들은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하셨다. 세속적인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을뿐 아니라 자기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금방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것은 결코 믿을 만한 것도 의지할 만한 것도 못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라고 말했다. 시인은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시 146:3)라고 말했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저 인간일 뿐이다. 때가 되면 늙고 병들고 죽어서 흙먼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모든 지도자-특히,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서 그들의 직책상 권위는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예로서 고넬료가 자신을 만나러 온 베드로를 보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할 때 베드로는 그를 일으키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5]이라고 말한 것을 보라).

     

능력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인간은 모두 원래 그저 인간일 뿐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곧바로 죽을 수밖에 없기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살다가 때가 되면 죽게 된다.

     

그래서 어떤 가수는 오래전에 이렇게 노래했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매우 짧은 벌거숭이 인생의 시간이 금방 모두 흘러가면 흙무덤에 이르게 되고 결국에는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인간의 직책과 자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자리도 지속적일 수 없고 영원할 수 없다. 그것들 역시 금방 지나간다. 그래서 누구도 그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본래 왕이 없었다. 특별한 계급도 없었다. 인간은 만들어진 존재로서 모두가 같았다. 그러다가 사람이 많아져서 대표가 생겼고 힘을 가진 자가 정복해서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그것이 직책이다. 왕의 자리도 마찬가지이다. 본래부터 왕이었던 존재는 없다. 누군가 만들어서 시작된 유한한 자리, 곧 조금 특별하게 여겨지나 인간이 만든 자리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절대적인 존재로 여길 필요도 없고 그런 존재로 여김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냥 인간으로서 특정한 자리에 있다가 인간으로 죽어 가는 존재로 보면 된다. 그러기에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우주 가운데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만 절대적이다. 그분은 영원하시고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쥐고 계신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인간 권력은 하나님의 통치보다 크지 않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 통치의 절대화를 거부한다. 하나님만 영원히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완전한 인간 정치권력에 절대적으로 몰입하는 것은 잘못되고 죄를 짓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권력을 절대화하는 우상화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통치의 관점에서 인간의 권력을 비평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인간의 권력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으며 중립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절대 선이 아니다. 언제든지 잘못될 수 있고 또 너무나 자주 잘못되기도 한다.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 선하고 완전하고 영원하다.

     

그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죽어 가는 존재들은 첫 번째 거룩한 탄생일에 목자들과 박사들이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한 것처럼 엎드려 경배해야 한다.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 2:2).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섬김과 경배이어야 한다.

(목, November 27,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인간의 모든 자리는 잠깐 앉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자리는 잠깐 앉는 것이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