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삶과 일: 소명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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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일
- 3분 분량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인간의 삶은 어떤 형태이든 일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일을 떠나서는 삶을 말할 수 없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꼭 직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수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은 본래 움직임이고 활동이다.
이런 점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하고 싶은 특정한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더욱이 자기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레프 톨스토이는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믿고 나는 무엇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철학의 모든 것은 이 세 가지에 귀착된다’고 철학자 리히텐베르크는 말했다. 이 세 가지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운데의 문제이다.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은 자기의 정체성과 자기의 믿음과 바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닐뿐더러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 없이 일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은 자기의 인간 됨과 자아실현의 맥락 안에서 의미를 지니는 고상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자기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토대이다.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정신적으로 떠돌다가 결국에는 가을 낙엽처럼 허무하게 사라져가게 된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무수히 많다. 그들은 일종의 우주 속 정신적 고아들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믿음의 대상을 발견해야 하고(우주 가운데 그런 것이 있다면) 희망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 사람에 따라 믿음의 대상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물질이나 정신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신적 존재일 수 있다.
인간은 텅 빈 가슴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나름의 믿음의 대상이 없다면 끊임없이 내적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마음에 무언가를 채우며 살아간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되는 곳이 어떤 사람에게는 무덤으로 여겨질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세계일 수 있다.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인간은 자기가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서 사는 것에 희망을 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희망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물질이 될 수 있다. 지식이 될 수 있고 권력이 될 수 있다. 정신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대한 자기 입장과 태도가 분명하게 정해지면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또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가 분명해진다. 신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삶은 그냥 그때그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외부에서 자기에게 하도록 주어지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반면에 신이 믿음의 대상이라면 그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을 어떠한 종류나 형태이든 소명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가 믿는 신적 존재와의 관계에서 이해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두시고 행하게 하시는 그 ‘소원’은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행하시는 선한 일과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모두 선한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도 선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믿음의 안에서 우리의 일도 선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베스 무어(Beth Moore)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면 그분은 또한 당신을 선택하셨고 선한 일을 이루도록 당신을 세우셨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무언가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일이다(에베소서 2:10). 당신의 영향력의 범위 안에서 무언가 중대한 영향을 줄 일이다.”
하나님은 존재를 부르셔서 존재하게 하셨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그래서 존재는 부르심, 곧 소명의 관점에서 이해된다. 삶과 일도 부르심, 곧 소명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일을 소명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작거나 크거나 하찮거나 소중한 일의 구분은 없어진다. 비록 외적인 것을 토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그렇다. 모두 선한 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성취해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된다. 그런 삶은 의미 있고 고귀하다.
(월, March 2, 2026: mhparkⒸ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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