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9. <불신앙의 이유: 마음에서 믿고 싶지 않아서 믿지 않는 것이다>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인습적으로 그냥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를 읽으며 ‘인간과 신앙(믿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신학적으로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탐구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왔다.

     

굳이 성경의 가르침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개인적인 검토의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무신론적 진화론보다는 유신론적 창조론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현상의 여러 면을 고려할 때 믿음을 갖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다.

     

(물론 합리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 성찰하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누구보다도 먼저 나 자신이 믿지 않을 것이며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 것이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는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이고 신과 같은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신의 존재를 확실히 믿는다.)

     

예를 들면, 만일 신이 없다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 상대적인 것이 된다. 그러면 법칙이나 규범은 모두 상대적이고 문화적이고 일시적이다. 그것들은 전부 당시의-전 역사적이 아니라-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형성된 것으로서 지엽적일 뿐 보편성을 지니지 않으며 영구적이지도 않다.

     

그런 경우 크게 두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하나는 이전 어느 시점에 우리와 똑같은 다른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규범을 왜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다른 하나는 그때는 맞을지 모르나 현재에는 맞지 않거나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지금의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그것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은 그냥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게 되면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싫어함, 곧 그러고 싶지 않음이 답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군인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죄수도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막 15:32).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도 그들은 다른 이유를 들어서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리고 무엇도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을 믿게 할 수 없다.

     

반면에 예수님을 향하여 섰던 백부장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 그는 똑같은 사건을 보고서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마음으로 받은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같게 나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부자가 나사로를 자기 아버지의 집에 보내어 자기 형제들이 고통받는 그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라고 요청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 16:29).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31절).

     

브라더 앤드류는 복음을 전하면서 경험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그가 사는 곳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그들도 알고 있는 결핵으로 아파하던 아픈 소녀를 하나님이 고쳐준다면 자신들이 믿겠다고 말했다’라고 한다. 그와 동료들은 그 소녀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정말로 기적적으로 그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기적은 좀처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기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적이라는 현상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열망을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믿음은 하나님에게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한 인간이 믿음을 가지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단독자로 서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시 108:1). 그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말했다. 믿음의 근원은 창조와 구원의 주 하나님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에 대한 한 사람의 믿음은 그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한 개인의 믿음의 출발점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그 선물은 인간의 응답을 통해서 주어진다. 믿음은 강압적인 선물이 아니라 인격적인 선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창조됨과 죄인 됨을 깨닫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믿음이 그 사람 안에서 작용한다. 그때 그는 존 뉴턴(John Newton)과 같이 이렇게 노래하게 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금, September 5, 2025: secondstepⒸ2025)

외도에 있는 예수님 상과 어떤 사람의 셔츠 뒷면에 써 있는 글
외도에 있는 예수님 상과 어떤 사람의 셔츠 뒷면에 써 있는 글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