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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가치, 선택의 근거: 누구나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다>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예전에 초등부 교육 담당 전도사로 교회를 섬길 때 한 여자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 청년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토요일 오후 퇴근할 때 다른 직원들이 그다음날인 일요일에 등산을 가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 청년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머뭇거릴 것도 없이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안 돼요. 주일에는 교회에 가야 해서요. 교사이고 찬양대원이라서 빠질 수가 없어요.”

     

그랬더니 곧바로 돌아오는 답변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아니, 한 주간 내내 힘들게 일하면서 고생했는데, 하루 쉬는 날에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편히 보내야지 일요일까지 교회에 가서 일하면서 보내면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서 참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었다.

     

회사를 나와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그 말을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주일마다 부모와 함께 예배당에 가서 생활하는 것을 그 때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런데 막상 회사 직원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음이 좀 산란해져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게 물어온 것이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한 후에 이렇게 답해 주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택하면서 살아요. 예를 하나 들게요. 주일이나 공휴일이 되면 사람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다를 수 있어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 주일간 힘들게 일했으니 그 힘든 몸과 마음을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산에 가서 풀려고 등산을 갑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한 주간 열심히 일했으니 휴일인 그 날은 집에서 편히 쉬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도 해서 먹거나 주문해서 먹기도 합니다. 또는 자매 같이 일요일은 주일-말 그대로 주님의 날-이니까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직분에 따라 교회를 섬기면서 보내요.

     

“그런데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서로가 이해가 안 돼요. 휴일에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날 등산을 가거나 예배당에 가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일주일간 힘들게 일하고서 쉬지도 못하고 또 힘들게 등산을 가느냐’고, ‘예배당에 가서 또 일하느냐’고 묻습니다. 반면에 휴일에 등산을 가는 사람은 ‘아니 이 좋은 날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느냐’고, ‘교회라는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하느냐’고, ‘산을 오르면서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날려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이 좋고 복된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해야지 어떻게 놀러 가거나 집에만 있을 수 있느냐’고. 게다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읊조리면서 말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 122:1).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요. 거기에는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 등이 담겨 있지요. 그러니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면 돼요. 아니면 그렇게 여겨지는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고 귀한 것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고 그러한 믿고 섬김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예배라고 믿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내 말을 다 들은 다음에 그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다음 주일도 똑같은 삶을 이어갔다.

     

우리는 날마다 무언가 선택하며 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것들은 “궁극적 관심”(the ultimate concern: 이 말은 폴 틸리히의 용어이며 그것에 대해 디트리히 본회퍼는 궁극 이전의 것들[penultimate things]과 구별되는 궁극적인 것[the ultimate thing]으로 설명한다)을 나타낸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신념에 근거한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그렇다. 신념이란 말 그대로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이 신념이다. 이런 점에서 신념은 ‘생각의 절대화’이다. 거기에는 다른 이들의 사고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신념은 이데올로기(이념)의 한 형태이고 신앙의 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신념은 결국 그러한 신념을 지닌 사람을 잘못 인도하게 된다. 그래서 선택에 대한 책임은 바로 선택한 사람 바로 그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예배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서의 가르침이 진리요 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따른다. 그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그것에 따라 살려고 애쓴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갈망하면서 그렇게 한다. 그 영혼은 아름답고 복되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 때문이다. 김정준은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고대하는 것은 우리 영혼이 가지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진정 그렇다.

(수, November 19,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가치, 선택의 근거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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