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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기>

◈ 마마글-마음에 쓰는 마음의 글: 믿음과 삶에 관하여 ◈

하루는 어느 젊은 부부가 일곱 살짜리 딸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곧이어 거기에서 일하는 여급이 와서 먼저 부모의 주문을 받았다. 그런 다음에 그 어린 소녀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을 먹고 싶어요?” 그 소녀는 겁을 먹은 듯이 부모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주문했다. “저는 핫도그를 먹을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핫도그는 안 돼.” 그런 다음 그 여급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통닭구이 한 조각 주세요.” 옆에 있던 아빠가 덧붙였다. “으깬 감자와 야채도 함께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여급은 그 어린 소녀를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핫도그에 케첩이나 겨자를 발라줄까요?” 그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겨자를 발라주세요.” 그 여급은 그들에게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하고는 주방 쪽으로 가버렸다.

     

잠시 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딸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저 사람은 나를 진짜 사람(I am real)이라고 생각해요.” (Wayne Dosick)

     

부모들에게는 자기들이 낳아 기른다는 이유로 자녀를 자기들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매우 나쁜 성향이 있다. 특히 동양적 문화와 사고방식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자녀는 절대로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녀가 이 세상에 오는 통로이지만 인격적으로는 부모와 자녀 모두 동등한 존재들이다.

     

자녀는 부모와 똑같은 한 사람의 개체이자 인격적 존재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지 소유물인 양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거나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자녀들에게는 자기들 나름의 고유한 존재성과 삶이 있고 걸어가야 할 인생길이 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그러한 삶을 살고 또 그러한 길을 잘 걸어가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 길을 찾아가는 자녀에게 그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 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녀의 삶과 관련하여 훌륭한 부모의 주된 역할이다.

     

부모들은 종종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라고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부모들도 사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기 부모들의 말씀을 안 듣기는 매한가지였다. 잠시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특히 자기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대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다(예를 들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옷을 선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나 직장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어차피 자녀들은 자기들의 인생을 살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자녀들도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 수도 없다. 부모와 자녀는 각기 독립된 개체들로서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각자 자신이 지게 될 것이다.

     

자녀를 늘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지라도 늘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해야 한다. 화를 내거나 꾸중할 때도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하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다. “이보세요, 이 소중한 아드님[따님]아 똑바로 해 주세요!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라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이상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까? 세상 물정이 아니라 애들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몰라서 하는 말인가? 사실 나 자신도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적잖이 후회된다. 그러함에도 최대한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인격적으로 말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언 1:8-9).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면 인격적으로 자란다. 그러나 자녀를 막 대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하면 막 자라고 비인격적으로 자라게 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자녀를 나의 소유물이 아닌 위탁받은, 그래서 때가 되면 떠나야 할-우리가 우리 부모님에게서 떠나온 것처럼-인격적인 존재로 대하자.

     

그러면 자녀도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존중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가 그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친 대로 나이가 들어서도 떠나지 않고 행할 것이며(잠언 22:6), 그들이 성인이 되고 우리가 늙게 되었을 때 우리가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한 것처럼 그들도 부모인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할 것이다.

     

인격적 관계는 상호적이다. 사람은 서로 인격적으로 잘 대해야 인격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점에서도 황금률, 곧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라는 말씀이 참되다.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잘 대하면 머잖아 그들의 삶에서 아름다운 인격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복에 복을 더하시고 세상에서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복될 것이다. 부모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이보다 기쁜 일이 있겠는가?

(화, December 2, 2025: secondstepⒸ2025) ※ 전에 썼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고쳐 쓰다.

사랑이 가득 담긴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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